나는 2023년 어느 가을날, 서울 공예박물관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축제에 우연히 들렀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 전통주 명인을 만나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전통주의 명맥이 한 집안의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이어진다고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은 지방의 전통가옥에서 집안의 며느리들이 잇고 있었다. 가족 단위의 삶 속에서 문화와 역사를 잇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 사회에서 과연 며느리가 지방에서 아파트가 아닌 전통가옥에 살며 시어머니에게 전통을 전수받고 싶어 할까? 개별 가정에서 이어지던 전통주의 제작 방식은 이제 도시화와 사회구조의 변화로 더는 지속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는 이런 전통을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 전통주의 매력을 느낄 기회조차 점점 희박해지는 세대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얼마전 고구마소주 려 40%를 맛볼 수 있었는데 군고구마처럼 달달하고 구수한 매력적인 맛이었다. “겨울에 한식과 페어링 했을 때 진가가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려는 그나마 상업화에 성공한 전통 증류식 소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에서 개인으로 승계되는 것이 아닌 상업적으로 이윤을 남기는 것이 전통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방면이 아닐까?
그렇다면 전통주는 어떻게 이윤을 남길 수 있을까? 전통을 현대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 글에서는 한국 전통주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세계적인 주류로 성장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인 법적·제도적 기반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전통주의 기준, 모호한 규제가 만든 혼란
현재 한국의 전통주는 전통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를 관리하는 법적·제도적 기준은 지나치게 모호하다. 예를 들어 안동소주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강원도에서 전라도산 쌀로 만들어 1년 이상 숙성한 고급 증류주가 전통주로 인정되지 않는 반면 보드카와 유사한 술은 전통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은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줄 뿐 아니라 한국 전통주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는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원료와 엄격한 제조 방식을 법적으로 보호받으며 일본의 재패니즈 위스키 역시 최근 품질 기준을 명확히 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반면, 한국 전통주는 특정 지역 특산물이라는 브랜드를 가지면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적 기준이 부족하다.
법안과 조례로 만드는 전통주 체계
한국 전통주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법안은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고, 지역별로 세부적인 규정은 조례로 위임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법안에서는 전통주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품질 기준과 지역성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원료의 일정 비율 이상을 해당 지역에서 조달해야 하며 제조 방식에 대한 기본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 숙성 기간, 병입 도수, 첨가물 제한 같은 세부 기준도 포함될 수 있다. 또한 특정 지역 이름을 사용하는 전통주는 원산지와 제조 과정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지리적 표시제(GI)를 도입해야 한다.
조례는 법안이 정한 틀 안에서 각 지역의 전통과 특성을 반영한 세부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안동소주는 안동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70% 이상 사용하고 전통적인 증류 방식으로 제조된 술만이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조례는 지역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품질 관리와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법과 조례로 전통주의 미래를 그리다
법안과 조례가 협력하면 전통주의 품질 관리와 브랜드 가치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고급 전통주로 자리 잡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스카치 위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안동소주도 명확한 법적 기준과 품질 관리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리고 글로벌 경쟁력
한국 전통주는 지역마다 독창적이고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느슨하고 모호한 규제가 계속된다면 전통주의 정체성과 브랜드 가치는 점점 약해질 것이다. 반대로 법안과 조례를 통해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한국 전통주는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스카치 위스키처럼 세계적 명성을 얻는 날, 한국 전통주의 진정한 가치는 비로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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