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무엇인가?

hyunmook 2024. 12. 4.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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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문구는 한국 사회에서 일제 강점기의 치욕을 되새기며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데 자주 활용된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왜 청나라의 침략으로 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을 겪었던 역사는 자주 논의되지 않는가? 왜 조선 후기의 쇠락과 조정의 무능함은 비판받지 않고 그 결과로 나타난 외세의 침략만을 기억하는가? 역사를 선택적으로 기억하며 특정 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진정한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단순히 외세에 의해 당한 치욕이 아니라 그러한 치욕을 초래한 우리 내부의 실패와 잘못된 선택들이다. 조선 후기의 역사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흥선대원군: 쇄국 정책과 근대화의 문턱에서

조선 후기,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서양 열강과 일본은 근대화를 통해 강대국으로 자리 잡았고 동아시아의 청나라는 아편전쟁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도 안일한 자세를 유지하며 쇄국 정책을 고수했다. 그 중심에는 흥선대원군이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잡은 이후 쇄국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며 외세의 간섭을 차단하려 했다. 그는 경복궁 중건, 서원 철폐 등 왕권 강화를 위한 개혁 정책을 펼쳤다.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국가 재정을 안정화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책은 국제 정세와 동떨어져 있었고 결국 조선을 세계 무대에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쇄국 정책은 외교적 고립뿐만 아니라 조선 내부에서도 개화를 원하는 세력과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흥선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위해 펼친 정책들은 단기적으로는 조선 내부의 안정에 기여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의 근대화를 막았고 이는 이후 조선이 외세의 침략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비(명성황후): 권력과 의존의 두 얼굴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후, 조정의 권력은 고종과 그의 왕비였던 민비에게 넘어갔다. 민비는 사후에 "명성황후"로 추대되며 일본의 만행을 부각시키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그녀의 생전 행적은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민비는 조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청나라에 의존했고 이는 조선의 자주성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민비가 청나라에 의존한 이유 중 하나는 흥선대원군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대원군의 쇄국 정책과 개화 반대는 민비와 고종의 정치적 노선과 충돌했다. 민비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청나라를 끌어들였고 이는 조선 내부 갈등을 국제적 갈등으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 시기 청나라는 아편전쟁과 서양 열강의 침략으로 인해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민비가 의존했던 청은 더 이상 조선을 보호할 수 있는 강대국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민비의 선택은 조선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켰고 조선 내부의 갈등을 더욱 격화시켰다. 민씨 일가의 전횡과 부패는 백성들의 불만을 키웠고 조선 조정의 정통성을 약화시켰다.

 

고종: 아관파천과 조선의 외교적 고립

고종은 조선 후기의 혼란 속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 군주로 평가받는다. 그의 가장 논란이 되는 선택 중 하나는 아관파천이었다.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이 결단은 일시적으로 일본의 압박을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조선의 외교적 자주성을 완전히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관파천은 고종의 우유부단함과 무능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고종은 외세의 힘을 빌려 일본의 간섭을 피하려 했지만 이는 조선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민비가 제거된 이후에도 고종은 조선의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했다. 그의 치세 동안 조선은 지속적으로 외세에 의존했고 이는 결국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이완용: 개화파의 선봉에서 매국의 상징으로

이완용은 조선 후기의 몰락과 국제 정세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과 외교관 생활을 통해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조선 조정의 무능과 내부적 갈등 속에서 점차 계산적인 배신자로 변모했다. 이완용은 개화를 지지하며 조선의 근대화를 추진하려 했지만 조선 조정의 개혁 의지 부족과 외세의 압박 속에서 결국 일본과의 협력을 선택했다.

 

이완용의 선택은 단순한 배신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는 조선의 생존을 위해 일본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매국을 결심한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의 행위가 조선의 주권을 상실하게 만든 데 기여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완용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매국노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무엇인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단순히 외세의 침략으로 당한 치욕이 아니다. 조선을 스스로 몰락의 길로 이끈 잘못된 선택들과 내부적 실패를 기억해야 한다. 삼전도의 굴욕,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 민비의 청 의존, 고종의 무능, 그리고 이완용의 매국까지. 이 모든 과정은 조선이 스스로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말은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역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치욕의 순간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수와 실패를 기억하고 이를 통해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한국은 조선 후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강한 국방력, 자주적인 외교, 그리고 국제 정세를 읽는 통찰력이 없다면 우리는 또다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시대에 SMR 예산을 다 깎고 신재생에너지를 고집하는 예산안을 통과시킨 국회는 아편전쟁의 패망 이후에 정세를 못읽고 청에 기댄 민비와 같은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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