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의(正義)라는 단어가 주는 숭고함에 눈이 멀어, 그 이면에서 돌아가는 정교한 ‘갈등의 비즈니스’를 간과하곤 한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하며 등장한 수많은 조직이 실상은 그 문제의 ‘완치’를 가장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기괴한 역설이다. 나는 이들을 ‘목표가 유한한 이익집단’이라 부른다. 이들은 숙주가 건강해지면 굶어 죽는 기생충과 같다. 해결이 아닌 연명을, 화합이 아닌 분열을 양분 삼아 자신들의 유통기한을 억지로 늘리는 자들이다.
1. 성공을 거부하는 비즈니스 모델: 갈등의 자본화
모든 정상적인 경제 주체는 목표를 달성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기업은 제품을 팔아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자는 혁신을 통해 한계를 돌파한다. 그러나 ‘목표가 유한한 이익집단’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이들에게 사회적 갈등은 고갈되어서는 안 될 소중한 원재료다. 문제가 해결되어 세상이 평온해지는 순간, 이들의 후원금 통장은 마르고, 정부 예산을 따낼 ‘위기 서사’는 파산한다. 따라서 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불편함’과 ‘차별’을 발굴하거나, 무해한 일상에 ‘혐오’라는 딱지를 붙여 인위적인 갈등을 발효시킨다. 이들의 KPI(핵심성과지표)는 사회의 개선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대중을 분노의 장(場)으로 끌어들였는가에 맞춰져 있다.
2. 페미니즘: 저울 자체를 망가뜨리는 ‘비대칭적 약탈’
페미니즘은 이 ‘유한한 목표’의 함정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하고도 비열한 사례다. 이미 현대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총량적 평형(Total Sum)은 이뤄졌다. 아니, 오히려 남성의 역차별이 일어난 시대라고 보는 게 바람직하다. 남성이 임금에서 미세한 플러스(+)를 가진다면, 그것은 위험 직군 노출과 물리적 사고 리스크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의 결과다. 반면 여성은 사회적 안전망과 전용 공간 등 유무형의 강력한 플러스 요인을 누린다. 하지만 이익집단은 이 전체 합산 결과를 의도적으로 은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70의 혜택은 ‘당연한 권리’로 고정하고, 남성이 가진 단 1%의 틈만 발견하면 그것을 ‘탄압’이라 명명하며 깎아내린다. 평등을 시인하는 순간 그들의 굿즈 비즈니스와 권력이 증발하기에,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차별의 환상’을 제조하며 시스템 전체를 전복시키려 하고 있다.
3. 노동조합: ‘리스크 전가’를 통한 시스템의 고사(枯死)
노동조합 역시 권리 보호라는 초기 목적을 상실하고, ‘노란봉투법’이라는 법적 면죄부를 등에 업은 채 시스템의 포식자로 진화했다. 자본주의의 기본 계약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자가 이익을 가져간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으로 무장한 현대의 노조는 불법 쟁의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받음으로써 자신들의 리스크를 ‘제로’로 만들고, 기업의 모든 이익은 가차 없이 요구한다. 회사가 망하든 말든 이들은 당장의 전리품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죽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외면한 채, 기업이라는 엔진의 연료를 남김없이 빨아먹는 이들의 폭주는 결국 국가 경쟁력의 하향 평준화라는 비극적 결말로 향할 것이다. 이들에게 노동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조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질일 뿐이다.
4. 가장 거대한 포식자: 86세대의 사다리 걷어차기
‘목표가 유한한 이익집단’의 정점에는 86세대가 있다. 이들은 민주화라는 과거의 영광을 무한 동력 삼아, 미래 세대의 생존권을 현금화하는 ‘세대 간 기생’을 자행한다. 작년의 국민연금 개혁안은 그 정점이었다. 본인들의 수급권은 성역화한 채, 후배 세대에게만 가혹한 보험료 인상을 강요하는 행태는 ‘공정’이라는 탈을 쓴 ‘집단적 약탈’이다. 그들에게 시스템의 영속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직 자신들이 수급자가 된 이후의 30년, 그 짧고 유한한 시간 동안만 시스템이 버텨주면 그만이라는 냉소적 이기심이 ‘연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있다. 이들은 닫힌 문을 열어 길을 내기는커녕, 자신들이 통과한 문을 걸어 잠그고 뒷사람들에게 통행세로 미래 전체를 요구하고 있다.
5. 도덕의 탈을 쓴 공포: 당신의 지능이 포식당하고 있다
대중이 이들의 ‘숭고한 구호’ 뒤에 숨겨진 탐욕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이들에게 송두리째 사냥당할 것이다. 이들은 당신의 일상에 침투해 ‘도덕적 죄책감’이라는 강력한 마약을 주입한다. 소등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환경 파괴범으로, 86의 과오에 의문을 제기하면 민주주의의 배신자로, 억지스러운 PC주의를 거부하면 혐오론자로 낙인찍는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명확하다.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들이 설계한 ‘열린 문(대세 여론)’으로만 걷게 만드는 것이다. 대중의 지능이 마비될수록 이들의 권력은 공고해지며, 당신이 피땀 흘려 일궈낸 성장의 결실은 이들의 조직을 불리는 사료로 전용된다. 이 기생 집단들이 승리할수록 사회의 역동성은 거세되고,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해진 정체된 늪에서 서로를 증오하며 살게 될 것이다. 쇼는 끝났다. 이제 이 도덕적 위선자들이 쳐놓은 거미줄을 걷어내고, 차가운 지능으로 시스템의 본질을 응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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